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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창세기1:3 -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세기 시리즈

by 능력의 복음 2021. 2. 11. 03:08

본문

[창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성경은 많은 Mysteries(신비들)이 감추어져 있다. 이것은 모두에게 열려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열리게 된다. 모든 사람이 알 수 없는 것들이 성경에는 넘쳐나게 존재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 이 신비들을 계시하시고 열어주신다. 이 신비는 곧 하나님 자신이시다. 또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mysteries)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여기서 천국의 “비밀”이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천국의 “신비”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영어성경의 많은 번역본들을 보면, 어느 번역 성경들은 “mysteries(신비들)”로 번역하였지만, 또 다른 여러 번역 성경들에는 “secrets(비밀들)”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 단어의 헬라어 원문의 발음을 보면 이러하다. [뮈스테리온(3466) μυστήρισν, ου, τό]
영어의 “mystery(뮈스테리)”는 헬라어 “뮈스테리온(3466) μυστήρισν, ου, τό”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볼 때에 “비밀”보다는 “신비”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신비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정도의 수준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신비는 경험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신비를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아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씀한다.

[엡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의 이 기도만 보아도 하나님을 아는 것은 경험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와 계시의 영”이 아니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없다.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지혜와 계시의 영”은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목회자들이 ‘말씀’ ‘말씀’ 하면서도 “성령에 대해서는 터부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것이 진실로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얼마나 소경들인지.... 성령님을 뒷전으로 하는 목회자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이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대제사장들과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아버지와 아들을 알기 위해서는 계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마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사람은 계시가 없으면,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하는 자일 것이다.
바울은 그리고 지혜와 계시의 영과 함께 마음의 눈을 밝혀주심을 구한다. 이것이 빛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라는 것은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여지는 것이다. 이것은 빛의 역할이다. 빛이 없다면, 이것은 곧 어둠이기 때문에 이 어둠 속에서는 그 어느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창세기1:2에 땅의 상태가 얼마나 어둠인지를 나타내고 이어서 그 다음절에서 하나님은 흑암일 수 밖에 없는 땅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빛이다. 바울은 창1:3의 구절을 인용하여 이 빛이 하나님을 계시하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대하여 말씀한다.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창1:3)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써 하나님을 나타내신 빛 자체이셨다. 이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는 것은 흑암일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소망이 없는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이 되어 주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흑암의 권세 아래 놓여 종노릇하고 마귀의 자식으로 살아감으로 그 결국이 진노의 자녀로써 형벌을 면치 못할 인생에게 빛을 보게 하신 것이다. 이 빛은 곧 소망을 의미한다.

[마4:16]
흑암에 앉은 백성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베드로전서 1:3에도 이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벧전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우리에게 이 빛이 되어 주시고 이 빛을 비추어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날마다 이 빛이 필요하다.
날마다 시시때때로 이 빛의 비추심으로 우리로 빛 가운데 거하게 하시도록 내어드림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빛의 비추심은 그리스도(하나님을)를 아는 것이다. 이 알도록 하는 것은 계시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확실한 계시가 주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다. 그러나 이 성경도 비추심이 없다면, 가리워지고 감추어진채로 경험하지도 깨닫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이렇게 간구함을 볼 수 있다.

[시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눈이 연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빛을 비추어 주심이요, 곧 이것은 계시를 의미한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 주의 약속들의 놀라운 것들을 알게해달라고 기도한 바울(엡1:17~19)과 이 시편저자와 같이 우리는 이 기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17:3]
영생(영원한 생명)은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아는 것이니이다
이것이 또한 처음 부분에 언급한 “천국의 신비”이다. 천국의 신비들을 알도록 허락된 자들은 전심으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었다.
아무에게나 이 신비를 계시하시지 않는다. 바울도 이것을 알고자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배설물로 여겼다.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의 신비는 전심으로 주를 향하고 주를 따르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된다. 이것이 빛이요, 영원한 소망이요, 영원한 생명이다.

지금 당신은 어떠한가? 이 빛의 비추심 가운데 있는가? 여전히 어두움에 있는가?
또 창1:2에 머물러 있는가? 창1:3에 머물러 있는가?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빛이)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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