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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시리즈

by 능력의 복음 2021. 2. 13. 01:06

본문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에 대한 진리는 성경에 넘치도록 증거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첫번째가 창세기 1:2이다.
창세기1:3에서 “빛이 있으라”하신 그 빛은 곧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1장에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요1:4-5]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9-12]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곧 세상에 비추는 참 빛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 1:3에서의 빛은 전 챕터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빛이 세상에 비추기 전에 앞서 행하고 계신 분이 있다. 그 분은 곧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실 때에 그 육신으로 오게 하신 능력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눅1:35에 계시하고 있다.

[눅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또 예수님을 임신한 마리아에 대하여 끊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정혼자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렇게 말씀한다.

[마1:20-21]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러므로 창세기 1:3에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빛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영의 운행하심이 있었다.

모든 일의 근원이자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곧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시다. 하물며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신 일까지도 성령께서 행하신 일이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천지창조의 일이 곧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일을 예표하는 복음임을 우리는 이로써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얼마나 존귀하신 분이신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존귀한 분을 터부시 여기고 가볍게 여기며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대단히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성령님은 흑암일 수 밖에 없는 아무런 소망이 없고 생명이 없어 죽은 자와 같은 인생 위에 여전히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그 소망없는 인생에게 빛을 비추시는 일을 하신다. 달리 말하여 소망없는 인생에 산소망이신 예수를 계시하시는 일을 하시며 그 계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받는 자들이 살아나게 하신다.

[요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은 곧 빛이시다. 말씀이 육체가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또 뒤집어서 말하자면, 예수께서 말씀이시다. 그리고 그 말씀이 빛이다.

그리고 그 빛이신 말씀을 비추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이러므로 반드시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그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도 이렇게 말씀한다.

[고전2:4-5]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우리는 수많은 말씀들을 들을 수 있는 말씀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수 많은 넘쳐나는 말씀이 이 시대에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말씀들 가운데서도 비추시는 능력을 행하시는 성령님의 나타남을 경험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시대이다.

고전 2:4의 처음 부분과 같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들은 대단히 많지만, 그 뒤에 나오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은 경험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신학교들 안에서도 “성령의 나타나심과 그 능력”의 일들은 없고, 오직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들만 가르친다.

신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 지식이 설득력이 있는 지혜를 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이다.

신학을 알면 알수록 그 신학이 성령이 역사하는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신학이란 잣대를 가지고 성령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판단하여 심판의 자리에 앉아서 왕노릇하는 것을 보게 된다.

신학은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올라서서는 안된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최근의 크리스천 뉴스에서 유명 신학교 교수가 절에서 스님들 앞에서 예수님을 보살 중의 하나라고 설파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신학교 교수를 신학교에서 다시 재신임을 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또 신학교 교수라는 사람들이 성경의 오류가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을 들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배운 목회자들은 어떠하겠는가? 또 그 목회자들의 성도들은 어떠하겠는가? 정말로 두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이 성령님을 무시한 결과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존귀히 여기지 않은 결과이다. 설득력있는 지혜의 말에 속지말라..

성령의 나타남이 없고 그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설교들을 경계하라..모든 것의 근원이 성령님이심을 알고 성령님과 함께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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