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안다면, 또 그것을 경험하였다면, 이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1)살아 있고 2)활력이 있어 3)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4)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첫번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살아있다. 이 말씀은 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다고 말씀한다.
[요1:4] 그(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으며, 곧 생명이 있는 존재이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에 죽은 문자를 대하듯이 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일반적인 지식적인 책으로, 단지 좋은 도서 중 하나로써 대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이 하나님 말씀은 그냥 그런 책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 성경은 인생의 지침서로써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며 지켜야 하는 정도로써의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엄청난 착오이다. 이 사람들은 진실로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는 태도는 반드시 중요하다. 이 하나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하나님도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보신다고 믿는다.
[계2:23]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각 사람의 행위는 그 사람의 뜻과 마음에 따라 나타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살아있는 하나님으로 대하며, 그것을 가까이 할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믿는 자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계심을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두번째로는 활력이 있다고 말씀한다. 활력이 있다는 것은 헬라어 원문으로는 이렇게 말씀한다.
에넬게스(1756) ἐνεργής, ές
✍🏻단어 정의
‘활동적인’, ‘움직이는’, 효과적인, 능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에 활동적이며, 움직이고 있으며, 효과적이고, 능력이 있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어 활동하고 계심을 경험해야 한다. 그 효과를 맛보아야 한다. 그 능력이 있음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말씀의 살아있고, 활동적이며, 효과적이고 그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것은 다시
히브리서4:12 이어서 살펴보자.
12 하나님의 말씀은 1)살아 있고 2)활력이 있어 3)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4)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세번째에 나타난 것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검으로 말씀하고 있다. 바울도 이것에 대하여 에베소서 6장 17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령의 검이시다. 이 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 왜 하나님 말씀을 “검”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이 “검”은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전 인격을 찌르시고 쪼개기까지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활력이 있어 무엇을 하신다는 것인가를 보면, 결국 우리의 전인격을 찔러 쪼개버리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와 격려와 칭찬등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또한 설교자들이 이러한 시선에서 해석하고 가르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전인격을 찔러 쪼개버리신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이 오신 것은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한다. 너무나 이상한 말씀이다.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분이 아니신가? 그런데 이 부분은 대조적으로 말씀하시는가? 또 그 다음 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마10:35-39]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 말씀을 보면 “검”의 목적을 보게 된다. 이 검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안에서 찔러 쪼개 버리는 일을 하신다. 또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것들을 찔러 쪼개 버리신다. 우리 안에 예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내 인생 어떻게든 살려보고자(성공,번영,명성,인정등등) 얼마나 애를 쓰는지....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것들을 찔러 쪼개 버리신다.
그리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신다.
여기서 “판단하다”의 헬라어 원문의 뜻은 이러하다.
크리티코스(2924) κριτικός, ή, όν
✍🏻단어 정의
‘결정하는’(‘비판적인’), 즉 ‘구별하는’, 식별하는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의 전 인격을 찔러 쪼개신 후에 찔리고 쪼개진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하나님의 “결정”하신다. 이 말 즉슨
전인격이 찔려 쪼개진 자의 마음의 생각의 뜻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연합을 의미한다. 그 말씀으로 살아가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하시는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는 이 말씀의 검으로 처절할 만큼 찔리고 쪼개져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찔리고 쪼개지는 역사가 그 받는 자에게 구원이며, 은혜이며, 복된 인생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것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회개한 적이 없는 사람이며 구원을 의심해보아야 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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