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늘 아래의 물에 대하여 하나님은 한 곳으로 모이게 하셨다. 이것을 바다라고 부르시고 그것으로 인하여 뭍(땅)이 드러나도록 하셨다.
전 챕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물은 창1:2에 보는 바와 같이 “깊음위의 흑암”이다. 결국 어두움을 상징하며, 흑암의 권세를 상징한다.
땅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특히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창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것을 볼 때에 땅은 여러가지의 의미가 있지만,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사람은 선악과를 따먹은 후, 흑암의 권세가 사람의 위에 덮고 있음을 성경은 말씀한다.
[마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늘 아래의 물을 한 곳에 모이게 하신 것은 이제 이 흑암의 권세를 멸하시는 것을 또한 의미한다.
이 물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를 넘어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어두움의 통치자가 온 땅을 통치하다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을 세우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한계를 정하시고, 그 곳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이 진리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씀한다.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창세기 1:9의 드러난 땅은 골1:13의 건져내심을 받고 옮기심을 받은 믿는 성도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흑암의 권세 아래 덮혀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를 다닐지라도 교회 안에 어떤 직분이 있을지라도, 하물며 사역하는 목회자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흑암의 권세 아래에 놓여 있다.
교회를 다니는데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안식, 곧 쉼을 누리지 못하며, 해방되는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악한 영들의 짓눌림과 어둠의 영향력에 헤매이며, 종노릇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요3:19-21]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진리를 따르기보다 세상을 따르고 세상을 사랑함으로 가까이 대하며, 진리 안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둠을 사랑하는 자요, 흑암의 깊음이 그 위에 지배하는 자이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씀한다.
[엡2:2-3]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이 육체의 욕심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는가? 바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이다. 바로 마귀이다. 곧 흑암의 권세이다.
이 육체의 욕심은 무엇인가를 보면, 3절 이어서 보면,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공중 권세 잡은 자와 우리 육체의 욕심은 연합이 되어있다. 이 마귀와 연합된 육체의 욕심은 거듭난 자의 영 안에 계신 성령을 대적한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영적인 실상이 보이지 않은가? 성경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성령님의 비추심으로 말미암아 성경이 열리면, 영적인 실상도 함께 보이게 되어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영적실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그 밑의 성도들이 악한 영에게 짓눌려도, 속고 있어도, 괴롭힘을 당하여도 도와주지 못한다.
하나님은 이 깊음 위에 흑암으로부터 땅을 드러내심과 같이 흑암의 권세 아래 놓여있는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드러내길 원하신다. 이것은 해방, 즉 자유케 하심을 의미한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목적이다.
[눅4: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고후4:3-4]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인 마귀 또는 흑암의 권세로부터 영향을 받는만큼 생명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해방, 곧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다. 교회를 다니는데 뭔가 불안함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날마다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에 잡혀 살고 있지 않은가? 늘 조급하며, 짜증이 나며, 늘 불안하여 전전 긍긍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들과 이와 같은 것들이 삶에 있다면, 그 사람은 흑암의 권세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가 그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있는만큼 생명의 성령님을 경험하지 못한다.
이 마귀는 그 지배하는 사람으로 “죄와 사망으로” 머물게 함으로 끊임없이 정죄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삶을 반복하게 함으로 이 어둠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령님은 이런 인생 속에 이렇게 역사하신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님이 오시면, 하시는 일은 죄와 사망에 묶여 있는 것들을 해방시키시는 일을 하신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눅4:18 위의 말씀을 처음부분을 보면, 포로 된 자를 자유케하고, 눈 먼자를 다시보게 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주의 성령”이시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반드시 “주의 성령께서” 해방시키시는 능력을 나타내신다. 이것이 없다면, 그 듣고 있는, 또는 그 선포하고 있는 말씀이 참 된 복음인지 분별해야 할 것이다.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하나님은 빛이시다. 성령님은 우리로 빛 가운데로 드러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인하여 흑암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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